발달장애 딛고 오케스트라 전문 연주자로 우뚝 선 홍정한씨
"어머니께 웃음 주려고 연주 배워"
국민연금 내는 사회인으로 자립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다섯 살 홍정한입니다. 백석예술대학교 클래식학과를 졸업했고 현재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전문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하루 3시간씩 연습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음악은…."
어눌한 말투와 부정확한 발음,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 표정 뒤로 사뭇 진지한 기운이 흐른다. 발달장애 2급을 지닌 플루트 연주자이자 장애이해교육 ‘하트해피스쿨‘의 강사로 활동하는 그가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4~6학년 초등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다.
자신을 불쌍한 사람도, 덜떨어진 사람도 아니라고 믿으며 어린 후배들과 음악으로 교감하는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털어놨다.
23일 홍씨는 "더 이상 발달장애가 불가능의 대명사가 아니었으면 한다"며 "나의 (플루트) 연주를 통해 누구나 각자 가진 보석 같은 재능을 발휘해 세상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동아들인 그가 플루트를 배우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당시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자신의 연주로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음악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줬다.
홍씨는 "플루트를 연주할 때마다 마음속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을 느꼈다"며 "음악을 통해 집중하는 법, 기다리는 법,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나갔다"고 털어놨다. 고정되지 않은 눈빛, 어색한 걸음걸이 등 정상인과 다른 행동 때문에 학창시절 왕따의 고통을 겪은 그에게 음악이 치유의 선물이 된 셈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새롭게 알려준 음악을 두고 그는 ‘내 인생의 쉼표‘라 표현했다.
그렇게 시작된 플루트와의 인연을 계기로 그는 2007년 발달장애 청소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하트하트재단 산하)에 입단했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그에게 더욱 커다란 자신감을 심어줬다. 꾸준한 연습에 힘입어 2007년 교육감상ㆍ보건복지부장관상에 이어 2008년 대한민국 음악콩쿠르 우수상, 2009년엔 경기도 장애인예술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 같은 해 지역을 빛낸 공로로 경기도지사 표창장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음악대학에 진학해 클래식을 보다 깊게 공부했으며 졸업 후엔 ‘하트미라콜로 앙상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전문 연주자로서 번 돈으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도 내며 보통의 사회인처럼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이 외에도 일반 학교를 찾아가는 하트해피스쿨의 예술 강사로서 매주 한 번씩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스물다섯 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의 인생 여정에 있어 가장 큰 힘은 바로 어머니다. 홍씨는 "어머니는 제게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 같다"며 "음악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음악을 쉼표에 비유한 것에 대해선 "음악 자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힐링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라며 "플루트 연주는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위대한 쉼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의 활동 외에 이루고 싶은 또 다른 희망사항으로 "기회가 된다면 세계를 다니며 연주하고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