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가 묻고 하트하트재단이 답했다
일 대 일 아동결연 대신 개도국 실명예방사업에 집중
시각장애 독서 프로그램 등 사각지대 찾아 꾸준한 지원
철저한 예산관리·피드백이 철칙
발달장애 청년을 30명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백석예술대 등 명문 음대에 입학시키고, 싱가포르 목관페스티벌 콩쿠르에서 장애인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한 플루티스트를 배출한 비영리재단이 있다. 국내뿐 아니다. 안과 의사가 부족한 탄자니아와 캄보디아 등 개도국에서 전문 인력을 7318명이나 양성한 곳. 하트하트재단의 28년 성과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해도 뚝심 있게 불가능에 도전해온 결과다. 비결이 무엇일까. 30년을 바라보는 하트하트재단을 향해 후원자들이 애정 어린 질문을 던졌다. 오랜 기간 재단을 후원해온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고액 기부자, 정기 후원자들로부터 궁금증을 모아 직접 풀어주는 시간을 마련한 것. 20년 이상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해온 하트하트재단의 장진아 국장(국내 사업 담당·이하 장)과 윤주희 국장(해외 사업 담당·이하 윤)이 A4 한 장을 빼곡히 채운 후원자들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했다.
◇내가 낸 기부금, 어떤 곳에 사용되는가
Q: 처음엔 해외 아동 결연을 생각하고 문의를 했는데, 하트하트재단엔 1대1 아동 결연 사업이 없더라. 대신 개도국 트라코마 퇴치 사업, 실명 예방 교육 등 다른 단체에선 보기 힘든 사업이 많아 흥미로웠다. 사업을 선정하는 기준과 그 이유가 궁금하다.
A: 1대1 결연을 원하시면 관련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를 연결해드린다. 대신 후원 아동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계속 돕고 싶다는 분들은 일반 후원자로 남았다. 하트하트재단의 사업 철학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자‘는 것이다. 한 아이를 양육하는 결연 사업은 이미 많은 단체가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재단은 개도국의 사각지대를 찾아다녔다. 알고 보니 전 세계 시각장애 인구 2억8500만명 중 90%가 개도국에 거주하고, 그중 80%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데도 기회를 놓쳐 실명에 이르더라.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등 해외 빈곤국의 시력 회복 및 실명 예방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결막염의 일종인 트라코마가 없어진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프리카에선 열악한 위생 환경과 먼지 많은 기후 때문에 전 지역의 75%가 트라코마의 영향을 받고 있다.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시력장애와 실명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단순히 치료한다고 끝이 아니다. 한 아이가 트라코마에 걸리면 가족을 시작으로 온 마을에 전염되기 때문에, 학교마다 화장실·물탱크를 만들며 위생 환경을 바꾸고 위생 교육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엔 한국 안과 의사들과 개도국을 찾아가 수술을 했는데, 그래선 지속 가능하지 않겠더라. 현지 도립병원에 안과를 짓고, 수술 의료진과 안과 준전문 인력(MLOP)을 양성하고 있다. 이렇게 18만7879명이 실명 예방 교육을 받았고, 수술 및 치료를 받은 환자는 무려 14만3920명에 달한다. (윤)
A: 저시력 아동을 위한 독서 확대기 지원 사업도 당시 정부의 독서 확대기 보급 사업 중에 학령기 아동을 위한 지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독서 프로그램 개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디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이 없더라. 국내외 비장애인 도서 활용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교과 능력, 일상 생활 능력, 자신감 등 5가지 능력을 개발하는 독서 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을 접한 아이들이 ‘그동안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급급했는데, 이젠 진로나 자립 방법까지 자연스레 터득하게 됐다‘며 감동을 전한다.(장)
◇후원금을 통해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가
Q: 내가 낸 기부금을 통해 사람과 지역이 변화되는 사례를 접할때 기쁘고 가슴이 뛰더라. 국내외 현장에서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A: 2008년 방글라데시 가지풀 지역에 안과 클리닉을 건립하고 의료진의 전문성 교육을 지속했다.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서비스가 입소문이 나면서 7년 만에 완전히 자립했다. 장비나 인건비 지원 없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받는 것에만 익숙하던 개도국 정부가 스스로 자립 방안을 찾게된 사례도 많다. 하트하트재단이 4년간 활동한 탄자니아 음트와라주(州)의 경우, 도정부가 나서서 재단에 이곳에 남아 노하우를 계속 전수해달라며 재원과 인력 투자 의사까지 밝혔다. 음트와라주에 안과 의사가 30명뿐인데, 이들을 안과 병원과 보건소에 투입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월급도 주겠다며 적극적이다. 이를 통해 오는 24일, 음트와라주에 안과 병원이 완공된다.(윤)
A: 파트너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변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 시각장애학교에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지원을 받다 보니 책 종류는 적은데 비슷한 책이 많고, 분류 및 검색 체계가 없어 도서관 사서가 일일이 찾아주지 않는 한 손에 잡히는 책만 읽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함께 리모델링을 한 인테리어 업체는 저시력 아동들이 바닥에 놓고 책을 보는 게 힘들어보였다며, 3000만원을 기부해 각도 조절 책상을 넣고 다른 후원 기업까지 찾아주셨다. 각 도서관은 지역사회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 맹학교 교사들은 지역의 시각장애인들을 불러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진행하고, 광주 세광학교는 시골 지역의 마을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한 제일모직, S-OIL, 삼성SDI 등 파트너 기업들은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먼저 연락한다. 사회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역자가 됐다.(장)
A: 꾸준한 인식 개선 활동은 정부 정책까지 바꾸고 있다. 국내 등록 발달장애인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15.5%에 불과하다. 이에 발달장애인의 새로운 직업군 개발을 위해 고용부·복지부·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 기관을 얼마나 돌아다니며 설득했는지 모른다. 지난 1년간 발달장애 예술강사가 전국 초·중·고를 찾아가 3000명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개선 교육(하트해피스쿨)을 진행했다. 발달장애 음악가의 뛰어난 연주를 듣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발달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반성했다‘며 놀라운 인식 변화를 보였다. 그 결과 지난해 말, 정부에서 ‘장애 인식 개선 강사‘를 장애인 직업군으로 인정해줬다.(윤)
◇내가 낸 기부금의 100%가 사업에 쓰이는가
Q: 내가 낸 기부금이 전부 수혜자를 위해 쓰이는지 궁금하다.
A: 하트하트재단은 사업별로 세분해 기부금을 받고 있다. 내가 낸 기부금은 지정한 사업에만 사용되는 구조다. ‘어떤 곳에든 써달라‘는 기부금은 부족한 사업에 충당한다. 일부 고액 및 정기 후원자 중엔 ‘해당 사업이 잘되려면 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돼야한다‘면서 재단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등 행정 운영비로 지정 기부하는 분들도 있다. 현재까지 재단 운영비를 모두 충당할 정도의 지정 기부금이 꾸준히 들어온 덕분에, 일반 후원금의 100%가 수혜자를 위한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해외 지부에서 연말에 사업비가 남았더라도 이월시키지 않고, 전액 본부로 반환한 뒤에 1월에 새로 집행한다. 1년간 사업하고 남은 비용을 아직 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은 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환차손이 생기더라도 투명성을 위해 그렇게 관리한다.(윤)
A: 후원자에 대한 예산 및 사례 보고 역시 철저히 하고 있다. 최근엔 몇천만원을 들여 회계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다. 기존엔 건마다 비용 지출을 승인하거나 한 달 간격으로 보고받곤 했는데, 이젠 해외 지부에서 지출된 비용을 실시간 본부에서 확인하고 승인할 수 있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