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서고 싶어 하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거기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통해 들었던 ‘가브리엘 오보에’의 선율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귓전에 맴돌고 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2804개의 좌석을 갖춰 카네기홀의 3개 공연장 중 가장 큰 규모의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영화 ‘미션’의 주제곡인 ‘가브리엘 오보에’의 익숙한 선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목에 명시된 오보에가 아닌 트럼펫으로 연주되면서 원곡과 음색이 다소 달랐지만, 연주자가 전해주는 감동은 영화에서 이 곡이 흘러나올 때 주던 것 이상이었다.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영화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오보에 연주를 통해 원주민의 경계를 풀게 했던 것처럼 객석에 앉은 비장애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이날 연주에 나선 25명의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를 안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 단원 중 일부는 손이나 몸을 흔드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악보와 동료를 번갈아 쳐다보며 박자를 맞췄다. 팀파니를 맡은 유용연(21) 씨는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열심히 허공에 손짓을 하며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단원들은 악기를 통해 동료와 이야기하고,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이날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연주는 미국 CBSN 주최로 열린 2018 세계찬양대합창제 특별공연이어서 여러 합창단의 노래가 끝난 후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1시간 남짓 걸렸지만 단원들이 참을성 있게 순서를 기다렸다. 그 모습에서 음악이 이들과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가브리엘 오보에’ 연주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400여 명의 합창단에 둘러싸여 할렐루야를 연주할 때는 발달장애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이라도 긴장하기 마련인 낯선 환경,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아무런 동요 없이 동료, 그리고 합창단과 하모니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에 카네기홀에 서기까지 단원들은 물론 이들을 도왔던 이들이 흘린 땀은 비장애인들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2006년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들었을 당시 단 10분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해 단원 1명당 전담선생 1명이 달라붙어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만 모여서도 마지막 순서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흘린 땀은 오케스트라 활동뿐 아니라 단원 개개인의 성취로도 이어졌다. 2006년 리코더로 입단 시험을 봤던 이한결(24)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전문사(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씨는 트럼펫으로 가브리엘 오보에를 협연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 씨는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돼 실감이 안 난다”며 “학업을 계속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싶다”고 말했다.
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단원들이다 보니 직원들뿐 아니라 단원들의 어머니들도 모두 미국까지 따라와 돌보는 수고를 해야 했다. 쌍둥이 형제 임제균·선균(23) 씨와 함께 온 어머니 안영희 씨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하면 비장애인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 공연을 마친 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지난달 25일에는 한국문화원 주최로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문화주간행사에 장애인 연주팀으로는 최초로 초청을 받아 케네디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케네디센터 공연에서도 앙코르 연주 때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등 찬사를 받았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미국 공연 지휘를 맡았던 안두현(30) 씨는 “우리 단원들이 솔리스트로서도 비장애인 이상의 연주 실력을 갖고 있다”며 “이번 공연을 바탕으로 삼아 다들 세계적인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갖고 정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